새 노트를 구입했을 때 가장 의욕이 높은 순간은 의외로 아무것도 적지 않았을 때다. 깨끗한 표지와 반듯한 페이지를 보면 이번에는 꾸준히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첫 문장을 적으려고 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무엇을 써야 할지 떠오르지 않거나, 첫 페이지부터 글씨를 잘못 쓰면 노트를 망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결국 날짜 하나만 적어 놓고 덮어 두거나 아예 사용하지 않은 채 다른 노트를 구입하는 일도 생긴다.
이런 문제를 줄이려면 노트를 ‘완성해야 하는 결과물’이 아니라 생각과 생활을 잠시 저장하는 공간으로 보는 편이 좋다. 기록할 만한 특별한 사건을 기다리는 대신 평범한 하루에서 다시 확인하고 싶은 것을 한두 줄씩 남기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다.
첫 페이지를 특별하게 만들 필요는 없다
새 노트를 사용할 때 가장 큰 장벽 중 하나가 첫 페이지다. 첫 장은 노트 전체의 시작이기 때문에 깔끔한 제목이나 멋진 문장을 적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기 쉽다.
하지만 실제로 노트를 계속 사용하려면 첫 페이지의 완성도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나는 노트를 시작할 때 첫 페이지에 복잡한 계획을 세우기보다 이 노트를 어떤 용도로 사용할지 짧게 적는 방식을 활용할 수 있다고 본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이 아주 단순하게 시작할 수 있다.
‘읽고 들은 것 중 기억하고 싶은 내용을 적는다.’
혹은,
‘할 일, 아이디어, 생활하면서 알게 된 것을 자유롭게 기록한다.’
이 정도 문장만 있어도 충분하다.
첫 페이지를 더 가볍게 시작하고 싶다면 구입한 날짜와 노트를 사용하기 시작한 날짜만 적어도 된다. 그 아래부터 평소 기록을 이어 가면 된다.
중간에 글씨를 틀렸다면 한 줄을 긋고 계속 쓰는 편이 오히려 기록 습관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수정할 때마다 페이지를 뜯거나 처음부터 다시 쓰기 시작하면 ‘실수하면 안 되는 노트’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종이 노트에는 실행 취소 버튼이 없다. 대신 틀린 흔적까지 남는다는 특징이 있다. 시간이 지난 뒤 예전 페이지를 다시 보면 그런 흔적도 당시 생각의 과정으로 읽히곤 한다.
특별한 일보다 ‘나중에 다시 필요한 것’을 적는다
매일 일기를 쓰려고 하면 “오늘은 별일이 없었는데 무엇을 쓰지?”라는 고민을 하게 된다.
하지만 기록과 일기는 반드시 같은 형태일 필요가 없다.
하루를 처음부터 끝까지 서술하지 않아도 된다. 기록할 소재를 찾는 가장 간단한 기준은 ‘이 내용을 일주일이나 한 달 뒤에도 기억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해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책을 읽다가 처음 알게 된 단어가 있었다면 단어와 의미를 적을 수 있다. 집 안의 수납 위치를 바꿨는데 이전보다 편했다면 바꾼 이유를 한두 줄 남길 수도 있다.
다음 주에 처리해야 하는 일, 다시 찾아보고 싶은 장소, 사용해 보고 괜찮았던 정리 방법,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다 떠오른 아이디어도 모두 기록 소재가 된다.
이렇게 보면 평범한 하루에도 적을 것은 의외로 많다.
특히 머릿속에서 반복해서 떠오르는 생각은 기록할 가치가 있다. 계속 기억하려고 노력하는 대신 노트에 옮겨 두면 나중에 다시 확인할 위치가 생기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을 기록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하루의 모든 일을 적으려고 하면 기록 자체가 부담스러운 과제가 될 수 있다.
한 페이지를 채우겠다는 목표보다 ‘나중에 다시 볼 가능성이 있는 것 한 가지’를 남긴다는 기준이 훨씬 가볍다.
무엇을 쓸지 모르겠다면 다섯 가지 범주에서 찾는다
기록할 내용이 전혀 떠오르지 않는 날에는 몇 가지 범주를 미리 정해 두는 것도 방법이다.
첫 번째는 해야 할 일이다.
오늘 처리하지 못한 일이나 내일 잊으면 곤란한 일을 적는다. 거창한 계획이 아니라 ‘도서관 책 반납’, ‘서랍 치수 확인’처럼 구체적인 행동이면 충분하다.
두 번째는 새롭게 알게 된 것이다.
책이나 전시, 다큐멘터리, 대화 등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사실을 짧게 남긴다. 출처를 다시 확인하고 싶은 내용이라면 책 제목이나 자료 이름도 함께 적어 두면 좋다.
세 번째는 떠오른 생각이다.
아이디어는 완성된 문장일 필요가 없다. ‘책상 위 물건을 줄이면 어떨까?’처럼 질문 형태로 적어도 된다. 당시에는 별것 아닌 생각처럼 보여도 시간이 지난 후 다른 기록과 연결될 수 있다.
네 번째는 생활에서 발견한 불편함이다.
매번 찾느라 시간이 걸리는 물건이나 자주 잊어버리는 일이 있다면 적어 둔다. 이런 기록이 몇 번 반복되면 생활 습관에서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도 보이기 시작한다.
마지막은 다시 하고 싶은 것이다.
다시 읽고 싶은 책, 다음에도 이용하고 싶은 방법, 다음 계절에 기억하고 싶은 준비 사항 등을 남기는 것이다.
이 다섯 범주를 매일 모두 작성할 필요는 없다. 그날 해당하는 것이 하나만 있어도 기록은 성립한다.
매일 쓰기보다 다시 펼치는 습관을 먼저 만든다
기록 습관을 만들 때 ‘하루도 빠짐없이 쓰기’를 목표로 삼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며칠 기록하지 못했다고 해서 노트 사용에 실패한 것은 아니다. 종이 노트에는 연속 출석이 필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중단한 뒤 다시 펼칠 수 있는가에 있다.
9월 1일에 기록하고 다음 기록이 9월 8일이라도 문제가 없다. 일주일 동안 빈 날짜를 채우려고 기억을 억지로 되짚을 필요도 없다. 9월 8일부터 다시 시작하면 된다.
노트를 눈에 잘 보이는 장소에 두는 것도 단순하지만 효과적인 방법이다.
기록할 때마다 서랍에서 노트를 꺼내고 필기구를 찾아야 한다면 짧은 생각 하나를 적기 위해 여러 행동을 거쳐야 한다. 반대로 책상 위에 노트와 펜이 함께 있다면 기록까지 필요한 과정이 줄어든다.
나에게 맞는 기록 시간도 찾아볼 수 있다.
하루가 끝난 뒤 정리해서 적는 사람이 있는 반면 생각이 떠오르는 즉시 짧게 적는 것이 편한 사람도 있다. 아침에 오늘 할 일을 기록하는 방식이 잘 맞을 수도 있다.
어느 방식이 더 옳다고 정하기보다는 실제 생활에서 가장 자주 노트를 펼칠 수 있는 순간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기록이 쌓이면 노트의 역할도 달라진다
처음 몇 페이지를 사용할 때는 노트가 단순한 메모장처럼 보인다. 하지만 기록이 수십 페이지 쌓이면 조금 다른 역할을 하기 시작한다.
예전에 고민했던 문제를 다시 발견하기도 하고, 몇 달 전에는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관심이 사라진 내용을 발견하기도 한다. 반대로 당시에는 한 줄만 적었던 생각이 시간이 지나면서 더 중요한 아이디어로 발전하는 경우도 있다.
이 과정에서 기록의 장점이 나타난다.
사람의 관심과 생활은 계속 변하지만 종이에 적어 둔 내용은 당시의 형태로 남아 있다. 현재의 기억만으로 과거를 떠올리는 것과 실제 당시의 기록을 읽는 것은 느낌이 상당히 다르다.
그래서 종이 노트는 적는 순간뿐 아니라 다시 읽을 때 가치가 생긴다.
한 권을 다 채우는 것을 목표로 삼기보다 ‘필요할 때 적고 가끔 다시 읽을 수 있는 기록’을 만든다고 생각하면 빈 페이지에 대한 부담도 조금 줄어든다.
마무리
빈 노트를 채우기 위해 특별한 하루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해야 할 일 하나, 새롭게 알게 된 사실 하나, 갑자기 떠오른 생각 한 줄도 충분한 기록이 될 수 있다. 첫 페이지를 완벽하게 만들거나 매일 일정한 분량을 채울 필요도 없다.
오히려 기록을 오래 이어 가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기준을 낮추는 것이다. 며칠 쉬었다면 그날 날짜부터 다시 쓰고, 틀린 글씨가 있다면 줄을 긋고 계속 기록한다. 한 페이지를 다 채우지 못했다는 이유로 억지로 내용을 늘릴 필요도 없다.
그렇게 기록이 조금씩 쌓이면 처음에는 서로 관계없어 보였던 메모에서도 자신의 관심사와 반복되는 생활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다.
다음 글에서는 이렇게 쌓이기 시작한 메모를 기호와 표시를 이용해 빠르게 구분하는 방법을 다룬다. 색깔을 여러 개 사용하지 않고도 할 일, 아이디어, 참고할 내용 등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간단한 기록 체계를 살펴볼 예정이다.
FAQ:
Q. 노트는 매일 써야 기록 습관이 만들어지나요?
반드시 매일 작성할 필요는 없다. 매일 쓰는 방식이 잘 맞는 사람도 있지만 며칠 간격으로 필요한 내용을 기록하는 방식도 충분히 가능하다. 작성 횟수보다 중간에 쉬더라도 다시 노트를 펼쳐 기록을 이어 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Q. 빈 노트의 첫 페이지에는 무엇을 적는 것이 좋나요?
노트의 사용 목적이나 사용을 시작한 날짜 정도면 충분하다. 예를 들어 ‘책, 생활, 아이디어 중 다시 보고 싶은 내용을 기록한다’처럼 한 문장으로 용도를 적을 수 있다. 첫 페이지를 목차로 사용할 계획이라면 비워 두고 두 번째나 세 번째 페이지부터 기록을 시작해도 된다.
Q. 일기와 일반적인 노트 기록은 어떤 차이가 있나요?
일기는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이나 감상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기록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일반적인 노트는 할 일, 독서 메모, 아이디어, 관찰 내용처럼 서로 다른 종류의 정보를 함께 적을 수도 있다. 목적에 따라 두 방식을 한 권에서 함께 사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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