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마다 시간이 달랐던 시대, 표준시는 왜 필요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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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서울에서 부산으로 이동한다고 해서 손목시계의 시간을 다시 맞출 필요는 없다. 두 도시 모두 같은 표준시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너무 당연한 일이라 국내에서 이동하면서 지역별 시간 차이를 고민할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시계가 널리 보급되기 전부터 모든 지역이 지금처럼 하나의 시간을 공유했던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시간의 가장 자연스러운 기준은 태양이었다. 태양이 하늘에서 가장 높이 올라가는 때를 정오의 기준으로 삼는 식이다. 문제는 지구가 둥글고 지역마다 경도가 다르다는 데 있다.

한 지역에서 태양이 가장 높은 위치에 도달했다고 해서 동쪽이나 서쪽에 떨어진 다른 지역에서도 정확히 같은 순간에 태양이 가장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교통이 느리고 생활권이 좁았던 시대에는 이런 차이가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철도와 전신이 도시와 도시를 빠르게 연결하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이제 중요한 것은 각 지역의 태양만이 아니라 서로 떨어진 사람들이 같은 시각을 어떻게 공유할 것인가였다.

태양을 기준으로 하면 도시마다 정오가 달라질 수 있다

표준시가 왜 필요한지 이해하려면 먼저 '지역 태양시'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지구는 자전한다. 그 결과 우리 눈에는 태양이 동쪽에서 떠서 하늘을 지나 서쪽으로 이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동서로 떨어진 두 지역에서는 태양이 자오선을 통과하는 시점도 달라진다.

경도 1도의 차이는 평균적인 태양시로 약 4분의 차이에 해당한다. 따라서 동서 방향으로 충분히 멀리 떨어진 도시들이 각각 태양을 기준으로 시간을 정한다면 시계가 가리키는 시각에도 차이가 생길 수 있다.

과거에는 이것이 반드시 심각한 불편은 아니었다.

사람이 걸어서 이동하거나 마차를 타고 가까운 지역을 오가는 생활에서는 몇 분 정도의 지역 시간 차이를 세밀하게 맞춰야 할 일이 많지 않았다.

마을의 생활이 해 뜨는 시간과 해 지는 시간, 교회의 종이나 관청의 신호 등에 맞춰 돌아간다면 그 지역 안에서 통용되는 시간이 더 중요했다.

즉, 당시에는 시간이 상당히 지역적인 정보일 수 있었다.

오늘날 우리가 어느 도시에서나 같은 시계를 보며 생활하는 모습과는 차이가 있다.

철도가 지역 시간의 차이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19세기 철도의 확대는 시간 사용 방식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기차는 여러 도시와 역을 일정한 순서로 연결한다.

출발역에서는 오후 1시에 출발하고 다음 역에서는 오후 2시에 도착한다고 시간표를 만들었다고 생각해 보자. 두 역이 서로 다른 지역 시간을 사용한다면 승객은 단순히 한 시간 동안 이동했다고 생각할 수 없다.

도시가 늘어나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여러 역의 출발과 도착 시간을 관리해야 하고 반대 방향에서 오는 열차와의 운행도 고려해야 한다. 철도 종사자와 승객 모두가 시간표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각 도시가 조금씩 다른 시간을 사용한다면 시간표 자체가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19세기 철도 회사들은 운행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일정한 기준의 시간을 사용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영국에서는 철도망이 확대되면서 그리니치 시간을 철도 운영에 활용하는 관행이 퍼졌다. 철도가 지역의 태양시보다 통일된 시간을 요구한 대표적인 사례다.

여기에서 표준시의 필요성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기차가 빨라졌기 때문에 시간 자체가 새로 생긴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장소의 시간을 비교해야 할 일이 급격히 늘어난 것이다.

전신은 시간보다 빠르게 정보를 전달했다

철도가 사람과 물건의 이동 시간을 단축했다면 전신은 정보 전달 방식을 크게 바꾸었다.

과거에는 먼 지역의 정보를 전달하려면 사람이 직접 이동하거나 편지를 운반해야 했다.

전신망이 구축되면서 물리적인 이동보다 훨씬 빠르게 먼 거리로 정보를 보낼 수 있게 됐다.

이 변화는 시간의 통일과도 연결된다.

A 지역에서 어떤 사건이 오후 2시에 발생했다는 정보를 B 지역으로 빠르게 보냈는데 두 지역이 서로 다른 지역 시간을 사용한다면 '오후 2시'라는 표현을 해석할 때 기준을 확인해야 한다.

반대로 두 지역이 공통된 시간 기준을 사용한다면 의사소통이 훨씬 단순해진다.

전신은 정확한 시간 신호를 먼 지역으로 전달하는 데도 활용될 수 있었다.

즉, 통신 기술은 표준화된 시간이 필요해지는 원인이면서 동시에 같은 시간을 넓은 지역에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

시계 기술만 발전한다고 사회 전체가 같은 시간을 쓰는 것은 아니다.

정확한 기준을 만들고 그 기준을 여러 장소로 전달하며 사람들이 그 시간을 실제 생활에서 사용해야 한다.

표준시는 이러한 기술과 사회적 합의가 함께 만들어낸 체계라고 볼 수 있다.

1883년 북미 철도가 보여준 변화

표준시 역사에서 자주 언급되는 사례가 1883년 북미 철도의 시간 체계 개편이다.

당시 미국과 캐나다의 철도 운영에서는 지역별로 다른 시간이 사용되면서 복잡성이 커지고 있었다. 철도 회사들은 1883년 11월 18일 북미의 철도 운행에 사용할 표준화된 시간 구역 체계를 도입했다.

이날을 흔히 미국의 시간 표준화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으로 설명한다.

여기서 한 가지 구분할 부분이 있다.

철도 회사가 운영을 위해 표준 시간을 채택한 것과 국가가 법률을 통해 공식 표준시를 정하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미국의 경우 연방 차원에서 표준 시간대를 법적으로 정비한 것은 이후인 1918년의 일이다.

이 차이를 알아두면 표준시가 어느 날 정부의 결정 하나로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기 쉽다.

먼저 교통과 통신의 현실적인 필요가 커졌고 여러 기관과 지역에서 통일된 시간을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이후 제도적인 체계가 정비되는 과정이 이어졌다.

세계가 연결되면서 국제적인 기준도 필요해졌다

한 나라 안에서 시간을 맞추는 것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철도와 선박, 국제 통신이 여러 나라를 연결하면 서로 다른 국가의 시간을 비교할 기준도 필요해진다.

1884년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국제 자오선 회의(International Meridian Conference)​는 이러한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이다.

이 회의에서 영국 그리니치를 지나는 자오선을 본초자오선의 기준으로 채택하는 방안이 국제적으로 논의되고 결정됐다.

다만 여기에서도 주의할 점이 있다.

1884년 회의가 열렸다고 해서 바로 다음 날 전 세계 모든 나라가 오늘날과 같은 시간대를 동일하게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아니다.

국가와 지역마다 실제 표준시를 채택하고 조정하는 과정에는 차이가 있었다.

시간의 표준화는 하나의 발명품이 세상에 등장한 사건이라기보다 여러 지역이 공통된 기준을 점차 받아들이는 과정에 가까웠다.

이 점은 미터나 킬로그램 같은 측정 단위의 표준화와도 비슷한 면이 있다.

혼자 사용하는 기준이라면 자신만 이해하면 된다. 하지만 여러 사람이 함께 사용하려면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공통 기준이 필요하다.

표준시는 태양을 버린 것이 아니다

표준시를 처음 접하면 한 가지 의문이 생길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용하는 낮 12시는 태양이 정확히 가장 높은 순간인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표준시는 일정한 범위의 지역이 하나의 기준 시간을 함께 사용하는 체계이기 때문이다. 같은 시간대 안에서도 동쪽과 서쪽의 태양 위치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래서 같은 국가 안에서도 지역에 따라 일출과 일몰 시각이 달라진다.

우리가 사용하는 시계는 똑같이 오전 7시를 가리키더라도 어떤 지역에서는 이미 해가 떠 있고 다른 지역에서는 상대적으로 더 어두울 수 있다.

이는 표준시가 자연적인 태양의 움직임을 무시해서 생긴 오류라기보다 사회적으로 공통된 시간을 사용하기 위해 선택한 방식의 특징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교통, 방송, 학교, 업무, 통신 등 수많은 활동을 연결해야 한다.

각 동네가 자신의 태양시를 사용한다면 이런 일정을 맞추는 비용이 훨씬 커질 것이다.

표준시는 태양을 더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한 장치라기보다 서로 다른 장소에 있는 사람들이 시간을 효율적으로 공유하기 위한 약속이라고 이해하면 쉽다.

하나의 표준시만으로는 세계를 표현할 수 없었다

여기까지 보면 또 다른 질문이 생긴다.

세계 전체가 하나의 시간을 사용하면 가장 간단하지 않을까?

기술적으로는 세계 어디에서든 하나의 공통 기준 시간을 사용할 수 있다. 실제로 국제적인 분야에서는 UTC 같은 공통 시간 기준을 활용한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는 낮과 밤의 주기를 시계와 어느 정도 맞춰 사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한국에서 낮 12시일 때 지구 반대편의 지역까지 똑같이 낮 12시라고 부른다면 그곳에서는 한밤중일 수도 있다.

그래서 세계는 표준화된 시간을 사용하면서도 지역에 따라 서로 다른 시각을 적용하는 시간대(time zone) 체계를 발전시켰다.

여기서 시간의 역사가 다시 흥미로워진다.

처음에는 도시마다 태양을 기준으로 시간이 조금씩 달랐다. 이후 철도와 통신 때문에 넓은 지역에서 시간을 통일할 필요가 생겼다. 그런데 세계 전체를 연결하려니 다시 지역별 차이를 체계적으로 나눌 필요가 생긴 것이다.

오늘날 해외여행을 가면 스마트폰 시간이 자동으로 바뀌고, 해외에 있는 사람과 화상회의를 잡을 때 상대 지역의 시각을 확인한다.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는 이 기능의 뒤에는 수백 년 동안 이어진 시간 측정과 표준화의 역사가 숨어 있다.

다음 글에서는 표준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세계의 시간대가 왜 나뉘어 있는지, 그리고 지도에서 시간대 경계가 경도선을 따라 반듯하게 그어지지 않는 이유까지 살펴본다.

FAQ

Q1. 표준시가 생기기 전에는 도시마다 시간이 정말 달랐나요?

지역의 태양 위치를 기준으로 시간을 정한다면 동서로 떨어진 도시의 지역 시간에는 차이가 생길 수 있다. 교통과 통신이 느렸던 시대에는 이런 차이가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철도와 전신이 발전하면서 여러 도시의 시간을 맞출 필요성이 커졌다.

Q2. 철도가 표준시를 만든 것인가요?

철도는 표준시가 확산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철도 하나만으로 표준시의 역사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철도 운행과 시간표 관리의 필요, 전신을 통한 정보 전달, 국제 교류 확대, 정부의 제도 정비 등이 함께 영향을 주었다.

Q3. 표준시의 낮 12시는 항상 태양이 가장 높은 순간인가요?

그렇지 않다. 표준시는 일정한 지역이 하나의 기준 시간을 함께 사용하도록 만든 체계이므로 같은 시간대 안에서도 위치에 따라 태양의 위치가 다르다. 따라서 시계의 낮 12시와 해당 장소의 태양이 가장 높이 오는 순간이 정확히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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