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곗바늘이 사라지다, 디지털 시계는 시간을 어떻게 숫자로 바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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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30

이 네 개의 숫자만 보아도 우리는 자연스럽게 시간을 읽는다. 시침이 어디를 가리키는지 살펴볼 필요도 없고, 분침의 각도를 해석할 필요도 없다. 숫자 자체가 시각을 알려준다.

지금은 스마트폰과 컴퓨터, 자동차, 전자레인지 등 수많은 기기에서 이런 방식으로 시간을 확인한다. 하지만 오랫동안 시계의 대표적인 모습은 원형 문자판 위를 움직이는 바늘이었다.

앞선 글에서는 수정 결정의 규칙적인 진동을 이용하는 쿼츠 시계가 어떻게 높은 정확도와 대량생산에 유리한 구조를 갖추게 됐는지 살펴봤다.

전자 기술의 발전은 시간 측정 방법만 바꾼 것이 아니었다.

시간을 보여주는 방법도 달라졌다.

시침과 분침 대신 숫자를 화면에 직접 표시하는 디지털 시계가 등장하면서 시계는 점차 단순한 시간 표시 장치에서 여러 시간 관련 기능을 처리하는 소형 전자기기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차이는 무엇일까

아날로그 시계와 디지털 시계를 가장 쉽게 구분하는 방법은 시간을 표시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다.

전통적인 아날로그 시계에서는 시침과 분침의 위치 관계를 통해 시간을 읽는다.

예를 들어 시침이 3을 조금 지나 있고 분침이 6을 가리키고 있다면 우리는 이를 3시 30분이라고 해석한다.

반면 디지털 시계는 3:30처럼 숫자를 직접 표시한다.

그래서 어린 시절 처음 시계를 배울 때를 떠올려 보면 두 방식의 차이를 쉽게 느낄 수 있다. 아날로그 시계를 읽으려면 긴 바늘과 짧은 바늘의 의미, 문자판의 눈금 등을 이해해야 한다.

디지털 표시는 숫자를 읽을 수 있다면 상대적으로 직관적이다.

그렇다고 디지털 방식이 항상 모든 면에서 더 편리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아날로그 문자판은 남은 시간을 공간적인 크기로 파악하기 좋다는 특징이 있다. 분침이 원의 절반을 이동하면 약 30분이 지났다는 식으로 시간의 흐름을 시각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방식은 시간을 서로 다른 모습으로 표현한다고 보는 편이 적절하다.

숫자를 표시하려면 새로운 화면이 필요했다

기계식 시계에서는 톱니바퀴의 움직임을 시침과 분침으로 전달하면 시간을 표시할 수 있다.

숫자로 시간을 보여주려면 다른 방식이 필요하다.

초기의 디지털 표시 방식에는 여러 기술이 사용됐고, 전자식 손목시계가 발전하면서 LED와 LCD 같은 표시 기술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LED는 스스로 빛을 내는 방식이라 어두운 곳에서도 숫자를 선명하게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초기 손목시계에서는 전력 소비가 중요한 문제였다.

손목시계 안에 넣을 수 있는 배터리의 크기는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초기 LED 디지털 손목시계 중에는 평소에는 화면을 꺼두고 버튼을 눌렀을 때만 시간을 표시하는 제품도 있었다.

사용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재미있는 경험이다.

시간을 보기 위해 시계의 버튼을 눌러야 하는 것이다.

이후 LCD(액정표시장치)​가 손목시계에서 널리 활용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LCD는 적은 전력으로 숫자를 지속적으로 표시하는 데 유리했다.

오늘날 우리가 떠올리는 고전적인 디지털 손목시계의 모습, 즉 화면에 시·분·초가 계속 표시되는 형태가 널리 퍼질 수 있었던 배경 가운데 하나다.

디지털 시계는 왜 기능이 많아졌을까

전자식 디지털 시계를 사용해 보면 현재 시각만 표시하는 제품보다 여러 기능을 갖춘 제품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알람, 스톱워치, 타이머, 날짜, 요일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기능은 디지털 시계의 구조와 잘 어울린다.

전자회로가 이미 시간의 흐름을 계산하고 있기 때문에 그 정보를 다른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스톱워치는 사용자가 버튼을 누른 순간부터 경과 시간을 계산해 표시한다. 알람은 미리 저장해 둔 시각과 현재 시각이 일치하면 소리를 내도록 만들 수 있다.

타이머는 설정한 시간을 거꾸로 계산한 뒤 0이 되었을 때 신호를 낼 수 있다.

이러한 기능들을 기계식 구조만으로 구현하려면 상당히 복잡한 장치가 필요할 수 있다. 전자회로에서는 상대적으로 작은 공간에 여러 기능을 넣기가 쉬워졌다.

시계가 단순히 "지금 몇 시인가?"라는 질문에만 답하는 기계에서 벗어난 것이다.

"얼마나 지났는가?"

"얼마나 남았는가?"

"정해둔 시간이 되었는가?"

이처럼 시간과 관련된 여러 질문을 하나의 손목시계에서 처리할 수 있게 됐다.

버튼은 손목시계를 작은 기기로 바꿨다

전통적인 시계에서 사용자가 가장 자주 하는 행동은 시간을 보는 것이다.

필요한 경우 용두를 돌려 시간을 맞추거나 태엽을 감는다.

디지털 시계에서는 버튼의 역할이 커졌다.

버튼을 눌러 표시 모드를 바꾸고, 알람을 설정하며, 스톱워치를 시작하거나 멈춘다. 제품에 따라 조명을 켜거나 다른 시간대의 시각을 확인하기도 한다.

사용자가 시계에 정보를 입력하기 시작한 셈이다.

이 차이는 이후 스마트워치까지 이어지는 중요한 변화로 볼 수 있다.

스마트워치에서는 화면을 터치하고 앱을 실행하며 알림을 확인한다. 현대의 웨어러블 기기가 갑자기 등장한 것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손목 위의 장치에 여러 기능을 넣고 사용자가 버튼으로 조작하는 경험은 디지털 시계 시대부터 이미 익숙해지고 있었다.

기능이 늘면서 시계의 디자인도 달라졌다.

원형 문자판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각형이나 직사각형 화면을 사용하기 쉬웠고, 화면 주변에 여러 버튼이 배치됐다.

시간 표시 방식의 변화가 시계 외형의 자유도까지 높인 것이다.

숫자로 시간을 보면 무엇이 달라질까

아날로그 시계에서 11시 55분을 본다고 생각해 보자.

분침이 거의 한 바퀴를 돌아 12 가까이에 와 있기 때문에 정오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문자판의 위치로 느낄 수 있다.

디지털 시계에서는 11:55라는 숫자를 읽는다.

5분 뒤가 12시라는 것을 계산으로 바로 이해할 수 있지만 문자판 위의 공간적 위치를 보는 방식은 아니다.

반대로 정확한 시각을 빠르게 읽는 상황에서는 디지털 표시가 편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운동 기록을 측정하면서 12분 38초라는 결과를 확인해야 한다면 숫자 표시는 매우 직관적이다.

이처럼 아날로그와 디지털은 단순히 옛날 방식과 새로운 방식으로만 나누기 어렵다.

오늘날에도 자동차 계기판이나 스마트워치에서 아날로그 형태와 디지털 숫자를 함께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사용 목적에 따라 각 표시 방식의 장점을 활용하는 것이다.

실제로 스마트워치 화면을 바늘 형태로 설정하면 내부적으로는 전자식 장치임에도 외관은 전통적인 손목시계와 비슷해진다.

시간 측정 기술과 시간 표시 디자인은 반드시 같은 방식일 필요가 없다는 좋은 예다.

정확한 시간을 보여줘도 기준이 다르면 문제가 생긴다

쿼츠와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면서 개인이 상당히 정확한 시계를 가지고 다니는 일은 점점 쉬워졌다.

그런데 여기에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

시계 자체가 정확하더라도 서로 다른 지역에서 기준으로 삼는 시간이 다르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까운 지역 안에서 생활할 때는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철도가 여러 도시를 연결하고 통신 기술이 발달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A 도시에서는 정오인데 B 도시에서는 지역의 태양 위치를 기준으로 몇 분 다른 시간을 사용한다고 생각해 보자. 도시가 몇 곳뿐이라면 각각 계산할 수도 있지만 철도망이 넓어지고 수많은 지역의 시간표를 연결해야 한다면 상당히 복잡해진다.

결국 시계를 더 정확하게 만드는 것만큼 무엇을 기준으로 시계를 맞출 것인가가 중요해진다.

이 문제는 표준시의 역사로 이어진다.

여러 지역이 공통된 시간 기준을 사용하게 되면서 시간은 단순한 천문 현상이나 개인 시계의 표시를 넘어 사회 전체가 합의해 사용하는 체계가 된다.

오늘날 스마트폰을 들고 다른 도시로 이동해도 우리가 시간을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는 배경에는 이러한 표준화가 있다.

다음 글에서는 철도와 통신의 발달이 왜 지역마다 달랐던 시간을 불편하게 만들었는지, 그리고 표준시가 어떻게 필요해졌는지 살펴본다.

FAQ

Q1. 디지털 시계는 쿼츠 시계와 같은 뜻인가요?

같은 의미는 아니다. '디지털'은 주로 시간을 숫자 형태로 표시하는 방식을 의미하고, '쿼츠'는 수정 진동자를 시간 측정의 기준으로 사용하는 기술을 가리킨다. 따라서 쿼츠 기술을 사용하면서 숫자로 표시하는 디지털 시계도 있고, 쿼츠 기술을 사용하면서 바늘로 시간을 표시하는 아날로그 시계도 있다.

Q2. 초기 LED 디지털 손목시계는 왜 버튼을 눌러야 시간을 볼 수 있었나요?

LED는 빛을 내기 위해 전력을 소비한다. 작은 손목시계에서는 배터리 용량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초기 제품 가운데에는 배터리 소모를 줄이기 위해 평소 화면을 끄고 버튼을 눌렀을 때만 시간을 표시하는 방식이 사용되기도 했다.

Q3. 디지털 시계가 등장하면서 아날로그 시계는 사라졌나요?

아니다. 두 방식은 지금도 함께 사용된다. 디지털 표시는 정확한 숫자를 빠르게 읽는 데 편리하고, 아날로그 문자판은 시간의 위치와 흐름을 시각적으로 파악하기 좋다는 특징이 있다. 스마트워치처럼 전자식 장치에서 아날로그 문자판을 화면으로 구현하는 경우도 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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