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니바퀴가 시간을 움직이기 시작하다, 기계식 시계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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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살펴본 해시계와 물시계, 모래시계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모두 자연에서 쉽게 관찰할 수 있는 움직임을 시간과 연결했다는 점이다. 그림자가 이동하고, 물이 흐르고, 작은 입자가 아래로 떨어지는 변화를 이용했다.

그런데 시간 측정의 역사에는 중요한 전환점이 찾아온다.

사람이 만든 기계 장치 자체에서 규칙적인 움직임을 만들어 시간을 나누기 시작한 것이다. 여러 개의 톱니바퀴와 이를 제어하는 장치가 결합되면서 우리가 오늘날 '시계'라고 들었을 때 떠올리는 모습에 한층 가까워졌다.

다만 초기 기계식 시계를 현대의 손목시계와 똑같이 생각하면 당시 시계의 역할을 놓치기 쉽다. 처음부터 작은 문자판에 시침과 분침이 달려 있었던 것도 아니었으며, 개인이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물건도 아니었다.

기계식 시계의 초기 역사를 이해하려면 먼저 왜 거대한 기계를 이용하면서까지 시간을 측정하려 했는가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기계식 시계는 무엇이 달랐을까

물시계에서는 물이 흐르는 속도가 중요하고, 모래시계에서는 입자가 좁은 통로를 통과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기계식 시계에서는 이 역할을 기계 구조가 담당한다.

초기의 기계식 시계에는 동력을 공급하는 장치와 여러 톱니바퀴, 그리고 동력이 한꺼번에 풀려버리지 않도록 움직임을 일정하게 나누어 주는 장치가 필요했다.

여기에서 특히 중요한 개념이 탈진기(escapement)​다.

시계에 에너지만 공급한다고 해서 시간이 자동으로 일정하게 나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무거운 추를 매달아 놓으면 중력 때문에 아래로 내려가려고 한다. 이것을 톱니바퀴에 바로 연결하면 에너지가 빠르게 풀려버릴 수 있다.

탈진기는 이 움직임을 조금씩 허용한다.

톱니바퀴가 마음대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제어하면서 일정한 간격으로 한 단계씩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 결과 지속적인 동력을 반복적인 움직임으로 바꾸어 시간을 나누는 것이 가능해진다.

기계식 시계 특유의 규칙적인 소리를 떠올려 보면 개념을 이해하기 쉽다.

시계 안에서는 단순히 톱니바퀴가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동력을 일정한 리듬으로 나누는 과정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

이 원리는 이후 기계식 시계가 발전하는 과정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처음부터 시침과 분침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늘날 시계에서 가장 익숙한 부분은 문자판이다.

1부터 12까지 숫자가 있고 시침과 분침, 경우에 따라 초침이 움직인다. 그래서 기계식 시계가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이런 형태였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초기 기계식 시계에서는 시간을 보여주는 방식이 지금과 달랐다.

중세 유럽에서 발전한 초기의 대형 기계식 시계 가운데는 눈으로 문자판을 읽는 것보다 종을 울려 시간을 알리는 기능이 중요한 경우가 있었다.

이 방식에는 당시 시계가 개인용품이라기보다 공동체의 시설에 가까웠다는 특징이 드러난다.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은 시계 문자판을 볼 수 없다. 하지만 큰 종소리는 상당한 거리까지 전달될 수 있다.

따라서 일정한 시각에 종을 울리면 여러 사람이 시간을 공유할 수 있었다.

시간 측정이 '장치를 가진 사람이 확인하는 정보'에서 '공동체에 전달되는 정보'로 확대된 것이다.

앞서 살펴본 조선의 자격루에서도 일정한 시각을 자동으로 알려주는 기능이 중요했다. 사용된 기술과 역사적 배경은 다르지만, 시간을 측정하는 것만큼 측정한 시간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일이 중요했다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왜 초기 기계식 시계는 그렇게 컸을까

오늘날에는 손목 위에 작은 기계식 시계를 착용할 수 있다. 하지만 초기 기계식 시계는 건물에 설치할 정도로 큰 경우가 있었다.

이 차이는 당시의 제작 기술을 생각하면 자연스럽다.

기계식 시계가 작동하려면 여러 부품이 서로 맞물려 움직여야 한다. 톱니바퀴의 형태와 크기를 만들고 축과 연결 장치를 제작해야 하며, 동력도 공급해야 한다.

현대처럼 작은 금속 부품을 높은 정밀도로 대량 생산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기 때문에 복잡한 기계 장치를 처음부터 손목시계 크기로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추를 이용해 동력을 얻는 방식 역시 충분한 공간을 필요로 했다.

추가 아래로 내려가면서 시계에 에너지를 공급한다면 추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이런 구조는 높은 건물이나 탑에 설치되는 대형 시계와 비교적 잘 맞았다.

그래서 초기 기계식 시계는 개인이 하나씩 소유하는 물건보다 특정 건물에 설치되어 공동으로 사용하는 설비에 가까운 성격을 보였다.

시계가 도시의 탑이나 중요한 건축물과 연결되어 발전한 배경도 여기에서 이해할 수 있다.

기계식 시계가 바꾼 것은 정확도만이 아니었다

새로운 시계 기술의 발전을 이야기할 때 흔히 '더 정확해졌다'는 점에만 관심을 두기 쉽다.

하지만 기계식 시계가 가져온 변화는 정확도 하나로 설명하기 어렵다.

더 중요한 변화 가운데 하나는 시간을 반복적인 기계 운동으로 나눌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해시계는 태양이 필요하다. 물시계는 물의 흐름을 관리해야 하고 모래시계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시 뒤집어야 한다.

기계식 시계는 에너지가 공급되고 장치가 정상적으로 움직이는 동안 지속해서 시간의 경과를 표시할 수 있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물론 초기 기계식 시계가 현대 시계처럼 매우 정확했던 것은 아니다.

부품의 마찰과 제작 정밀도, 온도 등 여러 요인이 시계의 작동에 영향을 줄 수 있었다. 오차가 생기면 시간을 다시 맞추는 과정도 필요했다.

그럼에도 기계 장치가 스스로 규칙적인 움직임을 만들어 시간을 계속 나눈다는 발상은 이후 시계 기술 발전의 중요한 토대가 됐다.

특히 더 정교한 탈진기와 진동 장치가 개발되면서 기계식 시계의 정확도도 점차 개선된다.

시간을 '듣는 것'에서 '보는 것'으로

초기 대형 시계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사람들이 시간을 반드시 눈으로 확인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종소리를 들으면 특정한 시각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는 스마트폰 화면으로 시간을 확인하는 현대인의 습관과 꽤 다르다.

아침부터 밤까지 휴대전화나 컴퓨터를 이용하다 보면 우리는 하루에도 여러 차례 숫자로 시간을 확인한다. 반면 종소리가 중요한 시간 전달 수단인 환경에서는 개인이 계속 시계를 들여다볼 필요가 없다.

공동체의 시계가 소리로 시간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이후 시계 문자판이 중요해지고 시침과 분침을 이용한 표시가 정교해지면서 사람들은 시간을 더욱 세분화해서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이 변화는 시간에 대한 감각에도 영향을 준다.

'종이 한 번 울리는 시점'처럼 비교적 큰 단위로 시간을 인식하는 것과 '10시 37분'처럼 세밀한 숫자로 시간을 확인하는 생활은 상당히 다르다.

시계가 정밀해진다는 것은 단순히 기계의 성능이 좋아진다는 뜻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하루를 더 작은 단위로 나누어 사용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거대한 기계에서 일상의 시계로

기계식 시계의 등장은 시간 측정의 역사에서 중요한 방향 전환이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태양이나 물, 모래의 움직임에만 의존하지 않고 톱니바퀴와 탈진기 같은 기계 구조를 통해 반복적인 움직임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됐다.

처음에는 장치가 크고 복잡했다.

건물이나 탑에 설치된 시계가 종을 울리면 주변 사람들이 함께 시간을 알았다. 개인이 손목을 들어 시간을 확인하는 오늘날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다.

하지만 기계 제작 기술이 발전하면서 상황은 달라진다.

부품을 더 작게 만들 수 있게 되고 시계 구조도 개선되면서 기계식 시계는 점차 다양한 형태로 발전한다. 문자판을 통해 시간을 보여주는 방식도 중요해졌다.

특히 도시 한가운데 높은 곳에 설치된 시계탑은 시간을 공동체 전체에 보여주고 들려주는 상징적인 시설이 된다.

다음 글에서는 시계가 왜 높은 탑 위로 올라갔는지, 시계탑과 공공시계가 도시 사람들의 생활에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를 살펴본다.

FAQ

Q1. 초기 기계식 시계도 현대 시계처럼 정확했나요?

그렇지는 않았다. 초기 기계식 시계는 부품의 제작 정밀도와 마찰, 사용된 구조 등 여러 조건 때문에 상당한 오차가 발생할 수 있었다. 이후 탈진기와 진동 장치, 제작 기술이 발전하면서 정확도가 점차 높아졌다.

Q2. 기계식 시계의 탈진기는 무슨 역할을 하나요?

동력원이 가진 에너지가 한꺼번에 풀리지 않도록 제어하고, 톱니바퀴가 일정한 간격으로 움직이도록 만드는 핵심 장치다. 쉽게 말하면 계속 풀리려고 하는 동력을 시간 측정에 사용할 수 있는 반복적인 움직임으로 나누어 주는 역할을 한다.

Q3. 옛날 기계식 시계에는 왜 종이 달려 있었나요?

초기의 대형 기계식 시계는 개인용 시계보다 공동체가 사용하는 시설의 성격이 강했다. 높은 곳에서 종을 울리면 시계 문자판을 직접 볼 수 없는 사람에게도 특정 시각을 알릴 수 있었다. 따라서 종은 시간을 넓은 지역에 전달하는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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